한국외국어교육학회 회원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한국외국어교육학회 회장직을 맡게 된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김현철(金鉉哲)입니다. 외국어교육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무심코 지나치는 무관심이 대세인 요즘입니다. 3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이 땅에서는 외국어가 교육되고 또 연구됐습니다. 오늘날 우리 학회는 10개 언어로 구성된 회원 한 분 한 분의 노력과 헌신으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외국어교육은 그 누가 중심이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대학에서의 외국어교육은 우리 스스로가 가꾸었고 아꼈습니다. 이에 지금의 독일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아랍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나뉘어 성장해 왔습니다.
물질적인 것이 모든 가치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우리 외국어교육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전 학회원 여러분의 고단하고 치열했던 연구와 교육의 역사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전분들이 이루어냈던 학문적 성과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현실과 유리된 채 상아탑 안에만 갇혀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서 비록 궁핍했지만 묵묵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이전과 비교해볼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나 연구 성과, 지역 사회에의 공헌 등이 그 이전보다 낫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고, 거기에 외국어교육의 위기라는 자조적인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이 시대에, 우리 역시 무기력하게 그 말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과 외국어교육을 연구하고 교수하는 것이 그리 죄송할 필요는 없는 세상인데도 말입니다. 더욱이 이제는 외국어교육에 길을 묻고 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입니다. 지금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말하고, 인공지능 시대와 초연결사회의 도래를 말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외국어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 섞인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 내부에도 그러한 의심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급속한 시대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여전히 외국어교육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대한민국 외국어교육의 교수자와 연구자들, 그리고 학습자들의 소양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납니다. 아무리 물질적 가치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라고 해도 외국어교육은 그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호응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 내며 열심히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외국어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구성원은 사회변화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학문적 치열함으로 무장하고, 외적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중과 소통하며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선학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소통, 그것은 두 개의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입니다. 그 길을 조금이나마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인사말에 갈음합니다. 또한 먼저 이러한 길을 만들어 주신 선배 회장님 이하 모든 회원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월 1일 김현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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